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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3:1-5 “고멜”
1.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간음한 아내 고멜을 (다시 사랑하고 데려오라)고 명령하십니다. 1절
고멜은 남편이 없어서가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되고 간음을 저지른 아내 고멜을 사랑하고 가서 데려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당신의 백성을 여전히 사랑하시기에 간음하고 우상 숭배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멈추고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건포도는 과당이 농축되어서 더 달고 달콤한 것입니다. 즐거움을 위해서 더 단것을 찾아간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즐거움에 더 우선하고 빠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포도과 과자를 즐기려고 각각 다른 신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 행동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법에는 간음은 돌에 맞아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자를 데려오라는 거예요. 율법에 사람과 사람이 간음에도 돌아 맞아 죽어야 하는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다면 십계명의 1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언약의 파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죄인, 그런 하찮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는 행위가 싫은 것이지 존재는 사랑하니까 존재에 대한 사랑을 변치 않으시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부부 관계로 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사랑이에요. 긍휼함이 없으면 오래 참음이 없으면 감당치 못할 사랑입니다(사1:18).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입니다(롬11:29).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1)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 것인가?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사랑한다. 다시 돌아오라! 청산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2) 내가 다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보라고 하십니다.
아내인가? 남편인가? 자녀들인가? 성도, 부모, 친구, 형제…. 하나님이 나를 다시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용서하고 다시 사랑해야 할 사람을 누구인가? 내가 찾아가 사랑해야 할 고멜은 누구일까요?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에 반응해야 합니다(행1:8, 요4:2-10).
2.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고멜을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사라)고 말씀합니다. 2절
음행을 저지르고 떠나간 고멜을 찾아올 때 그냥 데려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값은 치르고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고멜은 지금 죽어도 할 말 없습니다. 남편이 있는 상황에서 음란했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대가를 지불하고 사오라고 하시는 거에요. 횃불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식을 했습니다(창15:1.8-12,17). 그런데 그때 이미 하나님은 사람이 언약을 못 지킬 것을 알고 혼자 지나가셨습니다. 쌍무언약을 하자 하시고 편무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언약인 것입니다. 인간이 어떠할지라도 이 언약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음행을 했지만 오히려 댓가를 지불하고 사오라는 것입니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지불하고 샀습니다. 이것을 더 하면 은30세겔입니다. 30 세겔은 그 당시 노예 값입니다. 즉 노예를 사듯이 대가를 지불하고 사온 것입니다. 호세아가 지불한 비용은 여인의 낮아진 신분 노예 상태라는 것이고 노예를 사온 것입니다. 노예 값을 지불하고 사왔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노예 같은 존재이지만 불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예에 불과한, 죄인에 불과한 나를 사랑한 것입니다(롬5:6,8,10). 우리가 존귀한 자라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죄의 노예로서 하나님과 원수 된 상황에서 우리를 사랑해서 값을 주고 우리를 산 것입니다. 존귀한 예수님이 이 땅으로 낮아지셔서 성육신 하시고 하찮은 죄인을 구하시려고 대속하신 것입니다. 나 같은 존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이 지불하신 대가는 당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피 값으로 사셨기에 우리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대하고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고전6:20). 주님은 우리를 십자가 안에서 늘 새로운 존재로 봐 주는 사랑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새로운 존재로 십자가 안에서 피의 언약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